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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등산 : 남한산성 안내, 남한산성 등산

by 태풍이분다 202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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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안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 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모모야마시대), 중국(명나라, 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후반 들어 경기도는 남한산성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는데 필요한 남한산성 기초조사 실시와 도립공원 조성 기본 계획을 수립하였다. 먼저 남한산성 관광객 및 교통 실태에 대한 기초조사가 이뤄졌으며 이는 1969년에 발간된 「남한산성 도립공원후보지 기본조사계획보고서」에 수록되었다. 또한 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산성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산성리에는 100여 호가 거주하였고, 공공시설로는 중부면 사무소, 남한산 초등학교, 경찰지서, 우체국, 여관이 2개, 의원과 약국이 각 1개가 있었다. 마을의 민가는 대체로 초가와 목조 건물이었고, 공공건물과 여관만 기와와 양옥집이었다. 교통로는 우남로와 함께 동문에서 산성천을 따라 광지원으로 연결되는 7.8km 폭 5m 내외의 자연 도로가 있었다. 당시 관광객 수는 1년에 15만 명 정도로 대부분 당일 관광객이었다.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남한산성의 체계적인 관리가 시작되었다. 도로개선을 위해 1974년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을 통과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308번(342번) 지방도의 도로포장을 진행하였으며, 문화재 보수 복원 작업 또한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같은 해에 중부면 사무소가 산성리에서 광지원리로 이전하였다.

      남한산성 문화재를 보호하고 공원의 시설물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1976년 남한산성관리사무소를 개소하였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자가용 시대가 열리면서 남한산성 안의 산성리 마을은 서울 인근의 관광 휴양지로 바뀌었다. 주민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남한산성 내에 새마을금고를 비롯 산성보건진료소, 중부농업협동조합 산성리 분소가 영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1월부터 남한산성 하수처리장이 가동되어 오폐수에 대한 처리 능력이 향상되었다. 
 

남한산성 등산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있는 큰 산이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가려고 한다. 남한산성은 많이 갔어도 또 가고 싶은 산이다. 산세도 좋고, 산성도 잘 보존되어 있고, 천천히 산책하기에 좋다. 8호선 남한산성역에서 내려서 좀 걸어가야 한다. 등산로 입구의 계곡에는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면서 휴식을 취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벤치에 앉아서 쉬고 계신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준다. 우리나라 조상님들께서 많은 수모를 당한 장소이다. 계속 오르막길이고, 길은 시멘트포장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쉴만한 공간이 나와서 좀 쉬어 간다. 물도 마시고,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도 닦는다. 


남한산성 지화문에서


 
      한참 올라가니 남문이 나오고, 지화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안내문에는 정조대왕께서 보수를 하였다고 적혀있다. 나는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을 좋아한다. 수원 화성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등산객에게 부탁하여 지화문에서 인증숏을 찍었다. 지화문을 지나서 수어장대로 향한다. 수어장대 가는 길에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작년(2022년) 여름에 태풍으로 발생한 피해가 많다. 어차피 성곽은 수시로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수어장대에 도착한다. 수어장대에서 전망을 바라보면, 마치 내가 옛날에 유명한 장수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아주 좋다. 만일 내가 조선이나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는 십 대 후반에 전쟁에 징벌돼서 죽거나, 병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니면 전시에 몰래 탈영하다 잡혀서 평생을 노비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태평한 시절도 드물다. 물론 여러 가지 뉴스거리들이 있지만, 모든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산다. 나는 1958년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나서 어려운 시절도 보내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먹고 노년을 보내고 있다. 



 
      수어장대에서 내려와 서문으로 간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항상 블랙야크 제품의 아주 좋은 스틱이 있다. 한참을 내려가니 계곡이 나오고, 청량한 물소리가 나의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계곡 주변으로 등산객들의 노고를 달래주는 식당들이 있다. 나도 10여 년 전에 친구들과 산행 후에 자주 들려서 식사를 하던 가게도 있다. 여러 브랜드의 등산복 가게들도 있다. 고등학교 후배인 영재와 병수가 살던 집도 있고, 1층에 있던 백숙가게는 없어졌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해 폐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지역의 많은 곳이 위례 신도시로 편입되었다. 조금 걸어가면 마천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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