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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및 조선시대 둘러보기16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안에 있는 경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경릉경릉은 조선 24대 헌종과 첫 번째 왕비 효현왕후, 두 번째 왕비 효정왕후의 능이다.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아들로 1834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초반은 할머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헌종 재위 기간은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하였다. 효현왕후 김 씨(1828~1843)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헌종 3)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정왕후 홍 씨(1831~1904)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1844년(헌종 10) 왕비로 책봉되었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태후가 되었다.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는 1908년(융희 2) 황제와 .. 2024. 11. 21.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수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수릉수릉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이다. 문조(1809~1830)는 순조와 순원왕후의 아들로 1812년(순조 12)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순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며,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인물을 등용하고, 궁중의례를 발전시켰으나,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로 하였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황제로 추존되어 묘호를 문조로 바꾸었다. 신정왕후 조 씨(1808~1890)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순조 19) 왕세자빈이 되었고,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고종을 양자로 입양하여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을 하였다... 2024. 11. 20.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원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원릉원릉은 조선 21대 영조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영조(1694~1776, 재위 1724~1776)는 숙종과 숙빈 최 씨의 아들로 1721년(경종 1)에 왕세제로 책봉되고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법제도와 국가의례를 정비하여 "속대전"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 등을 편찬하였다. 탕평책을 실시하여 붕당의 정책을 해소하려 노력했으며, 세금제도를 개편하여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조선 역대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고(83세) 오래 재위(52년)하였다. 세상을 떠난 후 묘호를 영종이라 하였다가 1890년(고종 27) 영조로 바뀌었다. 정순왕후 김 씨(1745~1805)는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로 1759년(영조 35) 15세의 나이.. 2024. 11. 19.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혜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혜릉혜릉은 조선 20대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 왕후 청송심 씨의 능이다. 단의 왕후 심 씨(1686~1718)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로 1696년(숙종 22)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단의 왕후 심 씨는 숙환으로 풍질(중풍 등의 신경질환)을 앓았고, 1701년 9월에는 말이 횡설수설하는 증상이 있어 내의원에서 약을 의논하였다. 앞서 8월에는 병으로 인현왕후의 상사에 예를 갖추지 못했다. 가례 당시에도 극심한 복통을 일으켜 식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을 만큼 심각한 소동이 있었다. 혜릉은 처음 왕세자빈묘의 형태로 조성되었다가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하고, 묘를 능으로 올려 혜릉이라 하였다. 1722년(경.. 2024. 11. 18.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숭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숭릉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현종(1641~1674, 재위 1659~1674)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역대 조선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의 왕 중 최초로 왕비 외에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이다. 재위기간 동안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호남지역에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두 차례의 청나라 침략의 피해로부터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현종은 병자호란 이후 관념적으로 북벌론을 주창하였지만, 현종 시기 청나라는 자국 내의 잔존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조선은 국방에 있어서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청나라는 조선에 칙사를 파견하여 군비 확충과 무기나 화약의 제조, 축성등을.. 2024. 11. 15.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휘릉 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휘릉휘릉은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능이다. 장렬왕후 조 씨(1624~1688)는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1638년(인조 16) 왕비로 책봉되었다. 본관은 양주이고, 초년엔 귀인 조 씨에게 밀려 숨죽여 살고, 중년엔 본의 아니게 예송논쟁의 요인이 되고, 말년엔 기센 손자며느리 명성왕후 김 씨에게 치이는 등 고생 많은 삶을 산 왕비이다. 현종 재위기간에 있었던 예송논쟁(효종과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가 되는 장렬왕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사건)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휘릉 능침의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은 4개가 아닌 5개가 배치된 것이 특이하다. 이 글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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