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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및 조선시대 둘러보기

조선왕릉 기행 : 헌릉과 인릉(2)

by 태풍이분다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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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 헌릉과 인릉(2)

인릉은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 씨의 능이다.
 
조선의 제23대 임금인 순조는 김조순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암행어사 파견,《만기요람》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 관료 육성 등의 방식으로 국정을 파악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세계유산 조선 왕릉


 
정조의 후궁인 박준원(朴準源)의 딸 수빈(綏嬪)에게서 부왕의 2남으로 태어났으나 1남 문효세자(文孝世子)가 일찍 죽어 1800년(정조 24) 왕세자에 책봉되고 그해 6월에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즉위와 함께 영조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이 실시되어 경주김씨 김관주(金觀柱)와 심환지(沈煥之) 등의 벽파가 정치를 주도하였으나, 1803년 말에 친정을 시작한 후 몇 단계에 걸쳐 그들을 축출하였다.
 
그 후로는 정조의 결정에 따라 장인이 된 김조순(金祖淳)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래 강화되어 왔고 영조 ·정조대의 탕평책에도 꺾이지 않은 소수 명문 가문이 주도하는 정치질서를 개편하지 못하고 건강을 상한 데다가, 1809년의 유례없는 기근과 1811년의 홍경래의 난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게 되었다.
 
최인호작가의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상도에서 거상 임상옥에게 홍경래가 접근하여 난에 참여하라고 권유하였으나, 뿌리치고 난에 참여하지 않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삿갓도 이 시대의 인물이다.

김삿갓 : 방랑 시인 김삿갓은 평생 하늘을 보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삿갓을 쓰고 돌아다녀 붙은 이름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으로 김익순의 손자이다.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선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난을 진압하지 못할 것 같자 아예 성문을 열어 반란군을 들어오게 한 후 술까지 대접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후 이러한 사실이 밝혀져 김익순은 처형되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던 김병연은 과거 시험 때 나온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 김익순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를 보고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장원 급제하였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흐느껴 울며 할아버지인 김익순에 대한 사실을 말해 주자 김병연은 조상을 욕보였으니 하늘을 볼 면목이 없다며 삿갓을 쓴 채 전국을 방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경래의 난 (한국사 개념사전, 2015. 02. 24., 최인수, 공미라, 김수옥, 김애경, 김지수, 노정희)


 
그 이후 국정주도권은 외척 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김조순에게 돌아가고 이른바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자리잡음으로써 적극적인 권한행사를 하지 못하였다.
 
1827년에는 오랫동안 계획해 온 대로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에게 대리청정시키고 국정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자는 김조순 일파를 견제하면서 의욕적으로 정치의 개편을 추진하였지만 3년 후에 급서함으로써, 다시 순조가 정사를 보게 되었다. 그 이후 죽을 때까지 태도와 권한이 위축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835년(헌종)에 세실(世室)로 모셔졌으며, 저술은 《열성어제(列聖御製)》에 묶인 데 더하여 문집으로 《순재고(純齋稿)》도 있다. 능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인릉(仁陵)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조 [純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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