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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및 조선시대 둘러보기

조선왕릉 기행 : 의릉

by 태풍이분다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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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 의릉

의릉은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으며, 지하철 6호선 돌곶이 역에서 가깝다. 조선 후기 20대 임금인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과 그의 계비 선의 왕후 어 씨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의 제1자로 희빈 장 씨의 소생이다. 숙종의 승하 후 경희궁에서 즉위하였으나,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승하하였다. 


 
1717년 숙종의 주도하에 대리청정(代理聽政)하였으나, 그해 숙종이 몰래 노론의 이이명(李?命)을 불러 세자가 무자다병(無子多病)함을 이유로 세자를 교체하여 연잉군으로 정할 것을 부탁하였다. 이 때문에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대립은 극에 달하였다. 숙종은 세자를 연잉군으로 교체하고 싶었지만 정치적 부담으로 불가능하자 대리청정을 통해 세자의 실정을 트집 잡아 세자를 연잉군으로 교체할 속심이었다.
 
무자다병 : 후사가 없고 병약함.


성북구 석관동 의릉


 
하지만 대리청정을 맡은 경종은 매우 신중한 처세로 숙종과 노론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숙종 사망까지 버텼으며 결국 조선 20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왕권은 미약했고 노론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었다. 등극 얼마 지나지 않아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1721년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일 영조로 등극)을 세제(世弟)로 책봉한 뒤 다시 노론이 그의 병약함을 이유로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때 소론의 극려한 반대에 부딪혀 대리청정을 수차례 번복하였다가 노론의 대리청정 건의를 물리치고 친정(親政)을 하였다. 경종의 승하 후 경종의 의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이 즉위한다.
 
대리청정 : 대리청정은 군주가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 태자, 세자, 세손 같은 후계자가 군주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이다.

한효주 님과 지진희 님이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 동이에서 이 상황을 잘 묘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종 [景宗]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나 의릉은 앞뒤로 비껴 능역을 조성하였다.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단릉(單陵)의 상설을 모두 갖추고, 뒤에 있는 왕릉에만 곡장(曲墻 : 굽은 담장)을 둘러 쌍릉임을 나타낸 배치이다.

쌍릉


 
이러한 전후능설제도(前後陵設制度)는 영릉(寧陵 : 효종과 인선왕후 장 씨의 능)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으로서 풍수지리적으로 생기왕성한 정혈(正穴)에 봉릉(奉陵) 한 것이다.
 
석물은 병풍석이 없는 난간석(欄干石)ㆍ혼유석(魂遊石)ㆍ장명등(長明燈)ㆍ망주석(望柱石)ㆍ문무석(文武石)과 말ㆍ양ㆍ호랑이가 있다.
 
능석물의 배치와 양식은 명릉(明陵 :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厚陵制度)를 택하였는데 이는 『속오례의(續五禮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의릉의 능역은 11만 4,658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릉 [懿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의릉에는 옛날 중앙정보부 강당이 있으며, 이 강당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을 한 역사성 있는 건물이다.

 

옛 중앙정보부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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