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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목릉

by 태풍이분다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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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기행 : 동구릉 안에 있는 목릉

목릉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1552년 ~ 1608, 재위 1567 ~ 1608)중종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이다. 재위기간 동안 일본으로부터 두 차례의 침략(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당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격었으나, 이황이이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목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의인왕후 박 씨(1555 ~ 1600)반성부원군 박응순의 딸로 1569년(선조 2)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선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선조의 능


 
인목왕후 김 씨(1584 ~ 1632)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로 1602년(선조 35)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광해군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여 서궁(현 덕수궁)에 갇혀 지내다가 1623년 인조반정대왕대비의 자격으로 허락하였다.



 
목릉 자리에는 의인왕후의 능이 유릉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고, 선조의 목릉은 현재의 경릉(헌종) 자리에 만들어졌으나, 1630년(인조 8) 선조의 능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후 인목왕후의 능이 지금의 자리에 조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목릉 비문


 
조선왕조 500여 년간 왕위에 오른 사람은 모두 27명이다. 이 가운데 왕의 적장자 혹은 적장손 출신으로 정통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은 겨우 10명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17명의 왕은 세자의 책봉과정이나 왕위계승에 있어서 원칙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계승자였다.


 
조선왕조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왕실의 방계에서 처음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였다.

선조가 즉위한 이후 조정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들이 숙청된 이른바 기묘사화() 이후 물러나 있었던 인물들이 정계에 속속 복직하기 시작했다.

 

명종이 불러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퇴계 이황(退 )이 선조가 즉위한 다음 달인 7월에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로 임명되었고 조광조의 제자인 백인걸()이 직제학이 되었다.

 

반면에 명종문정왕후의 비호 아래 정권을 농락하던 윤원형 등 권신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선조의 등극으로 신진사류인 사림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선조 초반에는 명종의 고명을 받은 이준경 인순왕후의 아우로 외척을 대표하는 심의겸이 핵심 세력이었다. 결국 이들 간의 알력은 향후 정치적 파란을 몰고 올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대표 명의 허준 선생님도 선조시대의 인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조 [宣祖] - 당쟁과 왜군의 침입에 휩싸인 조선 제14대 왕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이 글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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